200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출품작품
이제 소풍 가자!
자작나무 세 그루의 시선으로 그려진 삭막한 인간 세상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사람들의 자만은 언제나 자연을 이용하고 파괴하는 역사를 써 왔다. 자연도 하나의 거대한 주체이고 그 속엔 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얽히고 설킨 채 살아가는가. 그것을 사람들이 잊어버릴 때 자연뿐만이 아니라 인간성도 함께 파괴되어간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자작나무 세 그루의 시선에서 인간 세상이 그려지고 있다. 언덕에만 서 있던 자작나무 세 그루는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바람과 해님과 비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자작나무들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자작나무 세 그루의 여행을 따라가 보자.
자작나무들이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대도시이다. 그런데 도시는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림은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데로 가 보자.” 실망한 자작나무 세 그루는 발걸음을 옮겨 어느 호수에 이른다. 그러나 호수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호수엔 타이어, 술병, 신발, 캔 따위가 떠다닌다. 사람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로 호수는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언덕 또한 전쟁으로 곳곳에 구멍이 파여 상처투성이였다. 이제 자작나무 세 그루는 놀이터에 도착한다. 그러나 아이들로 소란스러워야 할 놀이터는 텅 비어 있었다. 녹슨 놀이기구들만이 서로 뒤엉켜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같으면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던 곳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억지로 엄마 손에 붙잡혀 거의 끌려가다시피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런데 요즘엔 놀이터에서 북적대며 노는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직행해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직장인보다 바쁘다는 말이 나왔을까.
이처럼 이 책은 자작나무 세 그루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사는 모습을 신랄하면서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창백한 얼굴로 신음하고 있는 호수,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차라리 혼자 있고 싶어하는 언덕, 아이들이 놀러오지 않아서 쓸쓸하고 심심해진 놀이기구들…. 인간의 입장이 아닌 우리가 늘 무관심하게 바라보았던 대상들이, 자작나무 세 그루의 눈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자작나무들이 인간 세상에 실망하는 데서 끝나지는 않는다. 자작나무 세 그루가 인간 세상에서 발견한 희망은 어울림, 즉 '이야기가 있는 세상'일 것이다.
우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이야기로 넘쳐나는 곳, 살만한 세상을 발견하다
세상 풍경에 대해 절망하던 자작나무 세 그루는 어느 풀밭에서 비로소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는 아이들끼리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었다. “너희들도 같이 할래?” 한 여자아이가 자작나무 세 그루에게 물었고 자작나무들은 곧바로 어울려 신나게 논다. 자작나무 세 그루는 또 발걸음을 옮겨 어느 강가에 도착한다. 강가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기다란 탁자에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커다란 몸짓을 해가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또 몇몇은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자작나무 세 그루는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그런데 책의 다음 장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것들이 모두 밖으로 뛰쳐나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책 속의 등장 인물들, 말로 들려준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것들이 모두 뛰쳐나와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웃으면서 춤도 춘다. 또 이야기도 나눈다. 자작나무 세 그루도 그들과 어울려 마시며 오가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었다. 저녁 햇살을 받은 강물이 반짝거리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세상이 자꾸만 빈 놀이터처럼 변해가고 있다. 더 많은 경쟁, 더 빠른 속도, 더 높아지고 많아지기만 하는 건물들…. 그 속에서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고도 재미있게 들어줄 여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이어서 쓸쓸하고 공허해지게 마련이다. 자작나무 세 그루가 강가에 이르러 사람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서 안심하고 기뻐하듯이 살만한 세상의 모습은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인간 사이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들이 말을 건네고, 그 말에 귀 기울일줄 알 때 나무 한 그루에도, 호수도 언덕도 사랑하고 아낄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모습일 것이다.
이제 자작나무 세 그루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들이 서 있던 그 언덕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전히 해님과 바람과 비가 따뜻하게 맞아준다. 이 책은 200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출품되었던 작품답게 서정적인 그림이 인상적이다. 아름다운 그림이 자작나무 세 그루의 여행에 독자들도 기꺼이 동참하게 만든다.
저자 소개
● 글쓴이 하인츠 야니쉬
1960년에 태어난 야니쉬는 라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특히 그림책을 좋아하는 야니쉬는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오스트리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답니다.
● 그린이 마리온 괴델트
1973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함부르크 미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2001년에는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회에 참가해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들을 선보였지요. 지금은 베를린에 살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 옮긴이 이옥용
독일 콘츠탄츠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공부, 서울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번역하는 일을 하면서 창작동화도 쓰고 있지요. 옮긴 책으로는 『아기 돼지 세 마리』『한스 코는 꼬챙이 코』『숲 속이 궁금해요』『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같은 그림책, 『집으로 가는 길』『두 번 태어나다』『소피아의 섬』같은 장편소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