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아침햇살>2011년 겨울호에 <혜린이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 이 소개되었습니다.
   날짜 : 2012-10-31 09: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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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다! 나는 작가다?
-한예찬의 『혜린이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가문비어린이,2011)


정혜원(동화작가 ‧ 아동문학평론가)

  최근 ‘나는 가수다’란 TV프로그램이 한참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들끼리의 열전은 시청자들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나는 가수다’란 이 짧은 문장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가. 인생에서 자신이 누구며 어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가치 못지않게 중요하다 할 것이다. ‘무한경쟁’ 얼핏 생각하면 아주 멋진 말로 들리지만 이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들고 무수한 욕망에 시달리게 한다. 욕망은 끝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를 검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것을 선망하고 쟁취하려고 안간힘을 다한다. 어떤 일이든 그 가치를 알고 하는 것과 알지 못하고 덤비는 것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우리 아동문학도 ‘나는 작가다’란 강한 프로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수들처럼 치열한 경쟁의 도가니로 내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에 내포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필자는 아동문학평론가라는 분에 넘치는 옷을 입고 보니 작가들이나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들로 책장이 쌓여갈 때마다 곳간에 갖가지 보물이 쌓이는 것처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가끔씩 집에 오는 책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작가가 작품 한 권을 창작하기 위해 얼마나 긴 고통과 기쁨 사이의 강을 건너는지 잘 알고 있다. 독자들은 작가들에게 그 시대를 또는 시대를 뛰어넘는 그 무엇을 달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늘 새로운 것에 고민을 하고 소재발굴에 전전긍긍하다 보니  아동문학이라고 하기엔 좀 함량 미달인 듯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작가들은 이미 많은 작품을 써왔기 때문에 더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낄 수 있으나 실제 아동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아동들은 성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직 경험이나 지식 정도가 미숙하기 때문에(개인차는 있지만) 모든 것이 새롭고 다양하게 보인다. 실제로 많은 아동들과 이야기해보면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 특별한 소재의 작품, 실험적인 작품보다 자신과 공감하는 작품에서 더 감동을 느꼈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작품이 꼭 새로운 것, 실험적인 것,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이야기다.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일차독자가 아동이란 것을 인식하고 아동의 위치에서 창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예찬의『혜린이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이란 작품은 독자와 친밀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살펴보면 아동이 어디가 가렵고 어디가 아픈지 잘 가려낸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사교육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떤 개인만의 일이 아니며 이미 우리 사회의 큰 문젯거리로 등장한지 오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은 어느 학원에선가 헤매고 있다.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는 아이들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소위 말하는 상위 대학을 가는 데는 열여섯 배 차이가 난다는 통계를 본 적도 있다. 그 통계가 실제든 아니든 간에 그것을 들은 부모입장에서는 땡빚을 얻어서라도 사교육에 투자하려 할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 사교육과 아동의 행복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런 소재의 작품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가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과 독자와의 소통에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혜린도 사교육에 염증을 앓고 있는 아동이다. 싫어하는 학원순례를 해야 하며 좋아하는 취미도, 친구도 만날 시간이 없다. 혜린이 친구와 소통할 방법은 핸드폰 문자와 잠깐의 통화뿐이다. 혜린의 엄마는 스스로 혜린의 매니저를 자처한다. 방과 후 혜린이의 생활은 마치 연예인들처럼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린다. 심지어 몸이 아파도 이미 예약된 공연처럼 학원에 가야 한다. 학원에 다니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서 다니지 못하는 아동들에게는 이 작품 또한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막대한 경제적 소실을 일으키면서, 그것도 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킨다는 것이 뭐 그리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동 스스로 부족한 것을 깨닫고 원하는 학원에 가서 보충하는 것이야 얼마나 효율적이고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사교육시장만 배를 불리고 부모들의 노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아동들만 치열한 경쟁에 용사로 만들고 있으니 문제란 것이다. 
  어느 날 혜린이 무용학원을 엿보다가 호기심이 생기고, 새로운 꿈도 가지게 된다.

      “엄마, 영어나 수학 학원 그만두고 댄스 배우면 안 돼요? 저는 나중에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      어요. 그러려면 댄스랑 노래를 배워야 하잖아요.”
      엄마는 도끼눈을 뜨고 큰 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미쳤구나. 영어나 수학 학원을 그만 다닌다고? 뮤지컬 매우는 무슨 뮤지컬 배우야?      그런 거 해 가지고 무슨 돈을 벌겠어?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나 교수가 될 생각을 해. 그러려면      영어‧수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엄마가 말했잖아? 국영수를 잘해야 명문 대학에 간단 말이야. 그렇      게 말해도 못 알아듣겠어?”
      혜린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제가 왜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 돼요? 전 학교에 갔다오자마자 학원 다니고 숙제하느라 숨      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아요.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공부만 해야 하고 놀 시간은 하나도 없잖      아요.”(28쪽)   

  부모들이 말하는 명문대학이나 인기 있는 직업이나 돈도 다 좋다고 하자, 그러나 정작 미래를 살아갈 아동의 희망이 부모와 다른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하겠는가?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죽도록 공부만 시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부모의 역할일까? 참다 참다 폭발한 혜린은 엄마에게 반항하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 이것으로 인해 유대관계가 좋아야 할 부모와 자식 간에 균열이 생긴다. 주변에서 봐도 부모가 하다하다 지치면 자녀가 원하는 데로 가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왜 우리는 아이들이 원하는 길로 처음부터 인도하지 못하는 걸까? 사회에서 바라는 인간상, 부모가 바라는 기대치 때문일 것이다. 부모들은 일류병에 시달리고 있고 그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아동들의 희망은 간과한 채 막무가내로 사교육시장으로 떠밀어 넣고 있다. 우리 사회가 행복은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모두 한 곳을 보고 있으니 그 통로가 좁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따라 가려고 하니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혜린은 자신을 좁은 우리가 가둬놓고 인간 마음대로 사육하는 ‘비일 송아지’와 비유하고 종종 자살충동까지 일으킨다. 혜린의 이런 심리적 상태는 병으로 이어지고 학원보다 아픈 주사를 선택하며 병원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아빠는 혜린의 마음을 헤아리며 푹 쉬라고 하지만 엄마만 혼자 투사라도 된 양 혜린을 학원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아빠는 방학이 되자마자 한 달 이상 걸리는 베트남 출장을 가고 막내 수지 이모가 혜린네 집에 온다. 이모가 혜린이 편을 들어주지만 엄마는 막무가내다. 어느 날 아침, 혜린의 핸드폰에 이상한 문자가 와있다. 소원을 들어주는 행운의 50일 쿠폰을 다운 받겠냐는 것이다. 혜린이는 장난 같다고 생각했지만 절박한 심정에 다운버튼을 누른다. 첫 번째 소원은 다니기 싫은 학원에 다니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 소원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엄마가 헤아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고 작가는 이런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더 파고들기 시작한다.
  평상시 같으면 혜린을 깨우고 야단을 쳤을 엄마가 기척이 없자 혜린이 엄마방에 들어가 본다.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자기 또래의 여자 아이가 자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가 혜린을 보자 마구 야단을 치며 수학학원에 가라고 다그친다. 혜린이 멍하니 쳐다보자 엄마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확인하고 넋이 나간다. 뒤늦게 들어온 이모도 황당해 하고 믿기지 않는 일 앞에서 모두 망연자실한다. 이제 이모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이모가 엄마는 혜린이 대신 영수 학원에 다니라고 하고 혜린은 쉬면서 무용학원에 다니라고 한다. 열 한 살이 된 엄마가 처음에는 거세게 항의하지만 펼쳐진 현실에 바로 수긍한다.

      “혜린이는 언니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병이 들었어. 치료가 필요하단 말이야. 그러려면 정말      나쁜 것이 아니라면 혜린이가 하고 싶어하는 것도 좀 하게 해 주어야 돼. 언니, 조금만 두고 봐.      혜린이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말이야. 이제 나가야겠다. 오늘은 내가 학원에 데려다 줄게.”
  이윽고 수지 이모는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80쪽)

  수지 이모의 목소리는 작가가 우리 사회에 보내는 채찍이다. 이모는 혜린과 혜린 엄마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엄마가 시간을 거슬러서 혜린과 같은 또래의 아이가 된다는 설정이 독자로 하여금 쾌재와 동감을 하게 한다. 유치원에서 하는 놀이 중 역할놀이가 있다. 어떤 역할을 해봄으로써 그 역할의 상황이나 사정을 이해하는 놀이다. 혜린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엄마가 딸의 자리로 돌아가 본다는 의미에서 이것도 역할놀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를 통해 작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시키려 한다. 엄마가 딸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 복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화해를 위한 작은 시도이다. 작가가 보는 현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설정을 했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 입장에서 거부할 수 없는 거대세력인 성인들을 전복시킬 수 있는 것은 이런 상상으로만 가능할지 모른다. 작가의 상상은 문제와 균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간절히 화해하기를 바란다. 
  엄마가 딸의 영수학원에 갔을 때 요즘 초등학교 수학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모르고 혜린을 무조건 떠민 것 같아 반성한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성인과 아동의 자리에서 혼란을 겪으며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평화롭던 일상이 온통 뒤죽박죽 되어버린다. 한편 혜린은 무용학원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니까 스트레스도 풀리고 편두통까지 없어진다. 어느 날 혜린이 스스로 책상에 앉아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해서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억지로 시켰던 것과 달리 스스로 선택하고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란 걸 알려주는 대목이다. 엄마는 그 동안 있었던 일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랬음을 고백한다. 
  아빠가 출장에서 오기 하루 전, 고객의 소원을 들어주는 행운의 쿠폰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문자가 온다. 혜린이 혹시 해서 안방에 들어가 본다. 정말 엄마가 다시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혜린이의 일상은 달라질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욕망보다 혜린의 행복과 희망을 생각할 것이다.
  이 작품이 문제의식만 끌어냈다고 하면 다른 작품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을 아동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갖는 긍정적 에너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소재와 기발 난 생각으로 창작했다고 해도 독자가 외면하는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아동문학은 작가나 평론가가 기대하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이제 작가들이 기본으로 돌아가는 터닝 포인트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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