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도서 서평】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훌쩍 커 버린 우리 손을 잡아 줄까?
   글쓴이 :  (14.^.^.91)      날짜 : 2013-03-20 16:49:10
조회 : 4,250  

<가문비 어린이> '동그라미 손잡이 도넛'
 
* 이재복, 이순영 동시, 류여림 그림 / 가문비 어린이 2013 / 118쪽 / 8,500원 / 대상 : 초등학교 1학년 ~ 동심을 간직한 어른들
* 바우의 별 모으기 : ★★★★
* 두줄평 : 어린이들이 직접 쓰고, 그린 완소 동시집! 어른들이 잘 지은 동시 말고, 어린이들의 맨 마음을 알고, 느끼고 싶다면 ‘딱’ 알맞습니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읽기에 말이죠. ^^
 
 
이재복 동시인은 2003년생, 초등학교 3학년생,
이순영 동시인은 2005년생, 초등학교 2학년생,
남매 시인은 2012년 11월에 동아일보 동시 문예상을 받았군요.
오빠는 ‘노숙자 고양이’로 동생은 ‘까치발’로 말이에요.
와! 책 만들기를 좋아해 몇 년째 수백 권의 종이책을 만들고 있다네요.
그림을 그린 류여림 화백은 초등학교 6학년생이군요. 류화백에게 가장 예쁜 네 글자는
‘소녀시대’, 가장 맛있는 네 글자는 ‘스테이크’라고 합니다. 만화가, 작곡가 등 꿈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아직 정하지 못했군요. 꿈 많은 소녀에서 청소년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군요.
그럼, 남매의 데뷔작을 한번 감상해 볼까요?
 
 
 
노숙자 고양이  - 이재복
추운 날에 검은 색 하얀 색
아기 고양이가 떠돌아다니네
그 고양이는 너무 너무 불쌍해 보여
지금 창밖으로 치즈를 던져 주면 좋겠네
하지만 난 감기에 걸려
창문을 열 수가 없네
나는 물끄러미 아기 고양이를 바라볼 뿐
아기 고양이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뿐
 
 
까치발  - 이순영
아빠 앞에서
오빠랑 키재기 할 때
나는 까치발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오빠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까치발을 합니다
아빠의 손 비행기
어디로 날아가나
나의 목도
까치발을 합니다
 
 
어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열 살 안팎의 딱 고만큼의 마음 높이, 생각 깊이를 가진 남매가 아닌가요?
떠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불쌍해 치즈라도 하나 주고 싶지만…… 감기에 걸려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이, 인정은 많은데 약간은 소심한 아이!
오빠에게 지기 싫어 까치발을 하지만 아빠의 손동작 하나에 자기가 뭘 하는지도 잠시 잊고 한눈 파는 아이!
시라는 게 대단한 것이 아님을, 시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느낄 수 있잖아요.^^
역시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손잡이 도넛’이라는 시가 재미나네요.
 
 
손잡이 도넛 - 이재복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은
동그라미 안에 또 동그라미가 있는 도넛
무얼 먹을까? 가까이 하면
세모 네모 하트 별모양 도넛들
저요. 저요.
하지만 오늘도 먹고 싶은 빵은
내 작은 손 잡기 좋은
동그라미 손잡이 도넛
 
 
 
여러 가지 모양의 도넛들이 아름답게 꾸미고 눈길을 끄는데요, 화자가 택한 것은 자신의 작은 손으로 잡기 좋은 손잡이 도넛입니다. 자연스럽게 버스 손잡이를 떠올리게 되네요. 맛있는 도넛 먹고 무럭무럭 자라면 머지않아 버스 손잡이도 ‘꼬~옥’ 잡을 수 있겠지요?
남매는 이렇게 ‘도넛’과 ‘내 첫사랑’인 ‘생크림 와플’을 먹기 좋아하고, ‘유치원 다닐 때부터 친구가 됐’던 ‘닌텐도’ 게임을 즐기며, ‘어디를 보아도 멋진 자동차 시티’를 만드는 도시 어린이입니다.
하지만 우리 것과 자연에도 관심 많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는 동시인들입니다. 학교 급식에 나온 ‘팥죽’과 급식을 담당하시는 ‘팥죽 할아버지’를 보면서 전래동화인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도 떠올리네요. 전래동화에서는 ‘팥죽 할머니’가 호랑이한테 언제 잡아먹힐지 몰라서 마음을 졸이는데요, 시적 화자는 용감한 팥죽 할아버지가 ‘번쩍이는 국자로 딱! / 호랑이를 때려줄 것 같’다고 하네요. 통쾌하지 않나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얼마든지 이야기 흐름이 달라질 수 있는 ‘민담’의 특성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죠.^^
 
 
황금똥 - 이순영
 
할아버지, 봐, 봐
하늘에 금색똥이 있어
어디? 어디?
아침 일찍 일어난 해님이 똥 같아
아, 정말 환하네
할아버지도 저런 예쁜 해님 처음 보네
나도 누고 싶었어
저런 황금똥
 
 
해를 보면서 ‘똥’을, 그것도 ‘황금똥’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을 텐데요. 작품 속 할아버지도 어린 손주의 마음을 잘 이해하시죠? 아침부터 ‘해’를 보며 ‘똥’ 같다는 손녀의 말을 어리석게 여기거나 흘려듣지 않으시니 말이에요. 육십 또는 칠팔십 평생 봐 오셨을 해이건만…… 감탄의 말씀을 아끼시지 않잖아요. ‘온 마을이 아이 한 명을 키운다’는 말은 이래서 헛된 말이 아닙니다. 할아버지도, 해도 아이를 키우고 있잖아요. 아니, 아이가 해를 노래하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노래하잖아요. ^^
하지만 남매 시인에게 어른들의 마음과 세상사는 법은 알쏭달쏭 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른들도 빠진다는 닌텐도’를 왜 한사코 못하게 하는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인 ‘순둥이가 블루베어에게 이상한 행동을 한다며 할머니 할아버지 못 보게 꼭꼭 숨겨두라’ 말하지요. 심지어 엄마는 ‘아빠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아빠한테 화를’ 내지요. ‘이렇게 싸우기만 할 거면 왜 결혼을 한 걸까’라고 야무지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의 시선이 무섭긴 무섭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수학 답안지에 ‘6이라고 적은 것을 선생님은 8이라며 점수를 깎았다’고 하는 대목에서는 저 자신이 슬며시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소싯적에 애매할 때 일부러 그렇게 적은 적도 많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였지만요. ^^::: 하지만 시적 화자는 당당하게 말하네요. ‘눈이 나쁜 어른들이 다음부터는 똑바로 보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네요.
우리 남매 시인들도 평범해 보이지만, 정말 당하는 사람은 심각할 수 있는 고민을 하고 살아갑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동네 친구가 이렇게 말했죠.
너 학교 들어가면
왕따 당할 거야
- 이순영, ‘왕따’ 중에서
 
자신이 ‘친구들보다 한 살 어려서 / 엄마도 걱정 / 아빠도 걱정’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시적 화자는 ‘우리반 아이들이 아무도 왕따되지 않도록 / 먼저 다가가 인사하며 / 저는 씩씩하게 /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며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안심하게 하고 있을 정도로 마음이 훌쩍 자란 어린이입니다.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하고, 먼저 인사하는 데 반기지 않을 사람 없다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정을 넘어서 사랑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은 얼마나 경쾌한지요.
 
 
 
엄마에게는 말하는 거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생긴 거
(중략)
오빠에게는 비밀로 할까 말까
오빠는 어려서 사랑을 몰라
 
- 이순영, '남자친구 이야기'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되지요. 나이만 한 살 많을 따름인 오빠는 시적 화자의 기준에는 어린 아이인 거죠. 고백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말씀!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할까, 말까 망설이는 여동생의 사랑 방식에 비해 오빠의 사랑 방식은 좀더 구체적입니다.
 
 
우리 반 어떤 여자 애가
내게 핸드폰을 던졌어
왜 그랬을까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뭔가 이유가 있긴 있어
커서 꼭 결혼해야 한다면
내게 핸드폰을 던지지 않는 여자랑 하고 싶어
- 이재복, ‘결혼’ 중에서
 
까칠하고 한 성질 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고 싶다는 소망을 힘주어 말합니다. 부디 시적화자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
 
 
아카시아 껌 - 이재복
 
아카시아 껌으로 풍선을 분다
간절한 아카시아의 맛이 날아간다
 
 
두 연과 두 행이 전부인 짧은 시입니다. 짧지만 긴 여운을 주네요.
어린 시절은 짧습니다. 하지만 동심은 생각보다 오래갑니다. 중년이 된 저에게도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시를 어린 시절에 대한 오마주로 읽고 싶네요. 놓쳐 버린 풍선처럼 다시 돌아올 길이 없는 어린 시절이니까요.
하지만 ‘책(시집)’은 ‘타임머신’이잖아요. 남매 시인 덕분에 어린 시절 기행 잘 했네요. 어린 시절을 추억으로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느끼게 하는 데 이 시집의 큰 매력이 있네요.
어린 시절의 ‘그림 일기’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집 잘 보았습니다.
 
이 작품집을 본데다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라 그럴까요?
초콜릿 옷을 곱게 차려 입은 ‘동그라미 손잡이 도넛’ 하나 먹고 싶네요.
 그나저나 도톰하고 투박한 어른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손잡이 도넛,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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